부르디외는 개인의 문화적 취향과 소비의 중심이 되는 성향을 아비투스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사회는 개인의 취향이 출신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칸트가 실천이성비판에서 주장한 선의지가 지금 사회에서는 아비투스로 대체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 아비투스에 의존한 삶은 언제나 불안을 수반한다고 생각되네요.
조화로워야 할 주변 존재가 문화라는 이름 아래 비교 기준이 되고 그로부터 더 나은 자신을 만들려는
갈망이 멈추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탈출하기로 했습니다.
반짝이는 별에 있는 내가 중력 안에 있는 나를 내려다 봅니다.
그곳에서는 저와 주변이 그냥 그렇게 제각각 아름다울 뿐입니다.
'더 나은' 이란 수식어가 필요없이 모든 것이 스스로 나은 존재입니다.
아마 이게 성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각자가 가진 천성으로 아비투스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세상을
내 안에서 만들어 가렵니다.
The best가 아닌 My best를 창조하기 위해 오늘도 죽도를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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