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걸출한 철학자 미국의 유기체 철학자 화이트 헤드의 생각을 통해 이해와 질서, 신과 인간에 대한
저의 협소한 생각을 확장해봅니다.
함께 생활하는 가족, 직장에서의 동료, 친구 등등 많은 가까이 관계한 분들을 저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는 그들이 때로는 당혹스럽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저의 이해력이 부족한 까닭입니다.
그럼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일까요?
독립적인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사회의 객관적인 방식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인 기반 위에서 성립된 존재로써 생각할 때 훨씬 타자의 이해가 수월해집니다.
제가 정리한 이해가 실재하는 존재와 다르지 않다는 경험이 쌓이고 타자도 같은 축적의 시간이 지속되면
상호간에 신뢰가 생기게 됩니다.
여기까지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보편적인 구조를 해석해봅니다.
현대사회의 신뢰는 일반적으로는 이익을 그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권력이 제도를 창출하며 부와 명예는 권력의 인가(認可)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권력은 가장 피-지배적 위치에 있는 개인 이익에 국한된 사회활동을 하는 존재에게서 나옵니다.
왜냐면 이익을 지향하는 관성을 가진 사회에서 가장 기본단위인 백성에게 이익을 양도하지 않고 권력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민심은 권력의 어머니이며 곧 천심이라는 명제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해와 신뢰로부터 구축된 질서가 사회를 유지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자연과 신 그리고 인간의 비교도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세계에 진입한 충동이 가공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전개된 곳이 자연이라면,
이성적인 재단(裁斷)을 통해 새로운 질서가 부여된 곳이 인간사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과 인간 사회는 길항적인 긴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충동이라는 원초적 신성(神性)에 새로운 질서를 강요한 인간의 이성이 더 상위구조가 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오히려 인간 내면에 함께하는 신성을 발견하게 되며 아울러 무질서한 개체들의 전체적인 질서를 경외(敬畏)하게 될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개체로서 저는 화이트헤드의 사유방식을 따라 걸으며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의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임을 새롭게 인식하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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