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멍키 시티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사원파와 시장파 극장파라고 이름 붙인 세 무리의 원숭이들이 자기들의 생존을 위해
음식을 얻는 기술과 규칙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아 돌아보게 됩니다.
고대 원시사회에서는 자신들의 생존에 부딪치는 문제와 모순을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신화를 통해
해결하려 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축적되며 체계적인 교리가 형성되면서 경전으로 변하구요.
요즈음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변한 것일 뿐인 것 같습니다.
제국주의 시절 문명이 야만을 계몽한다는 오만이 세상을 전쟁터로 만든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구요.
충동이 우선하는 자연으로부터 문화의 기능은 모두가 공존하는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가는데까지일 겁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일찌기 이를 날 것과 익힌 것으로 멋지게 표현했네요.
자연과 야만의 날 것으로부터 과학과 문화라는 익힌 것으로의 변화가 인간의 삶이라구요.
하지만 이는 우열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한 신화일 뿐,
이를 뛰어넘는 인간의 우월감은 오만일 뿐이라구요.
제 마음 안에도 타자를 무시하거나 비난하는 우월감이 자라고 있지나 않은지
레비스트로스의 충고가 자꾸만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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